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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반 배달' 사라졌다…고물가가 바꾼 남대문시장의 점심[르포]

by 타잔20 2024.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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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반 배달' 사라졌다…고물가가 바꾼 남대문시장의 점심

"옛날에는 시켜서 먹었지. 요즘은 이렇게 싸와서 먹어." - 20년째 가게를 운영 중인 오모씨(63)

"쟁반 배달 문화도 곧 유물이 되겠죠." - 30년여간 쟁반 배달 장사를 한 신모씨(63)

지난 28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이곳에서 20년째 작은 가게를 운영 중인 오모씨(63)는 점심 시간이 되자 도시락 가방에서 반찬통을 꺼내들었다. 이날 오씨의 점심 메뉴는 흰쌀밥과 고추장아찌, 미역 줄기 볶음, 삶은 계란 한 알이었다.

맞은 편에서 수입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는 민모씨(63)는 고구마를 삶아서 도시락통에 담아왔다. 그는 "요즘은 쟁반 배달 시켜 먹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며 "경기도 안 좋은데 간단히 먹는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상인도 "장사가 안되니까 8000원도 부담스럽다"고 했다.

 

남대문시장의 활력을 상징하던 '쟁반 배달'이 사라진다. 과거 머리에 쟁반을 겹겹이 이고 배달을 가는 쟁반 배달이 많았지만 최근 도시락을 싸 들고 오는 상인들이 늘어났다. 고물가 시대에 불경기까지 겹치면서 매번 식사를 사 먹기 부담이 됐다고 상인들은 입을 모았다.

"이제 유물이 될거야" 확 줄어든 쟁반 배달

신모씨(63)는 남대문시장에서 '쟁반 배달의 달인'으로 불린다. 머리 위에 뚝배기 그릇 2개와 닭볶음탕이 담긴 커다란 쟁반을 들고 노련하게 잰걸음으로 시장 구석구석을 누빈다. 왼손을 가슴 앞으로 뻗어 중심을 잡고 행인과 부딪히지 않게 안전 거리를 유지했다.

그런 그도 최근 일거리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했다. 신씨는 "예전에는 쟁반으로 배달하는 식당이 수십 개는 됐는데 지금은 열 개도 안 남았다"고 했다. 신씨는 "가게 접고 떠난 사람들도 많고 단골도 많이 사라졌다"며 "쟁반 배달 문화도 곧 유물이 될 것"이라고 했다.

고물가와 불경기의 결과라는 게 이곳 상인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남대문시장 갈치조림 골목에 있는 식당 대부분은 지난달부터 일제히 가격을 올렸다. 대표 메뉴인 갈치조림은 1만2000원에서 1만4000원으로, 제육볶음은 1만원에서 1만2000원으로 올랐다. 7000원대 찌개류 가격도 8000~9000원으로 인상됐다.

한 음식점 주인은 "단골들한테 미안해서 그동안 가격도 못 올렸다"면서도 "재룟값에 인건비까지 오르니까 버티고 버티다가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쟁반 배달' 사라졌다…고물가가 바꾼 남대문시장의 점심

 

대한민국 전통시장 1번지 '남대문시장'… 공실률 19% "폐업하고 떠난다"

 

실제 남대문시장은 긴 불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대문상인회에 따르면 올해 초 남대문시장 상가 공실률은 약 19%였다. 점포 5개 중 하나는 주인 없이 비어있는 셈이다.

남대문시장의 중심 상가는 액세서리, 여성의류, 아동복 상가 등이다. 과거에는 러시아, 일본, 브라질 등 외국인 바이어들이 해당 상가를 돌아다니며 대량으로 물건을 구매하는 일이 많았다. 최근에는 중국산 제품 품질이 높아지면서 외국인 바이어들에게 내세울 경쟁력이 약화했다. '이커머스'(전자 상거래)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일반 소비자들 발걸음도 줄어들었다.

 

이날 오전 남대문시장 액세서리 상가에서 만난 60대 상인 역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코로나19(COVID-19) 전에 비해 10퍼센트도 회복이 안 된 것 같다"며 "임대료도 벌기 힘드니까 모두들 폐업하고 떠난다"고 말했다.

상가 앞에 위치한 퀵 사무소도 한산했다. 과거에는 바이어들이 구매한 물건을 물류 회사로 보내기 위해 한창 바쁠 시간이었다. 퀵 사무소를 운영하는 안모씨(62)는 "예전에는 하루에 200~300건 들어왔으면 지금은 30건"이라며 "장부가 하루에 앞뒤로 한 장도 안나온다"고 했다.

식당을 물려 받아 운영 중인 40대 상인은 "과거 남대문시장은 내수와 외화가 만나는 공간이었다"며 "요즘은 다들 길거리에서 구경만 하고 간다. 예전에는 이곳을 대한민국 전통시장 1번지라고 했는데 요즘은 살아있다는 느낌이 안든다"고 말했다.

문남엽 남대문시장 상인회장은 "남대문시장 점포 수는 1만개에 달한다"며 "천편일률적인 정책으로 큰 전통 시장과 작은 전통 시장을 지원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 각 시장이 자신들의 강점을 발휘하고 자생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쟁반 배달' 사라졌다…고물가가 바꾼 남대문시장의 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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